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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정공>성재공휘동훈가장(誠齋公諱東勳家狀)
誠齋公諱東勳家狀 府君諱東勲誠齋其號也玉川趙氏高麗檢校門下侍中諱璋其始祖也三傳而諱元吉號農隱恭讓朝以定策勲封玉川府院君與圃牧陶冶幷名五隱生諱瑜以麗朝副正當麗運訖固守罔僕義寔杜門洞七十二賢之一也累傳至諱智崙有相好亭湛樂之風三傳至諱大春從遊於河西金先生之門皆中葉名祖也高祖諱麒燁曾祖諱敏奎祖諱鍾華考諱縯永皆有學行隱居求妣豊川任氏泰俊女府君以隆熙戊申十月二日生幼有異禀朗慧絶倫少無違咈親意年才齠齔入學不煩敎督而孜孜矻矻貧多務得細大不捐焚膏油以繼晷恒兀兀以窮年文行夙就講明經義扶植倫綱孝友根天極志物之養盡友于之篤以小學爲修己治人之準則而各盡其道六行咸備隣里稱善鄉黨誦慕焉府君三十六歲癸未祖妣偶嬰奇疾憂形于色問醫製藥湯藥煎粥不委於人暫不離側露禱于天竟以十二月一日丁憂哀毀踰制哭不絶聲淚不竭血幾至滅性而醒者累矣喪葬祭奠盡從朱文公家禮一遵無違逐日早起展墓墓前當膝處之成臼祖考自乙酉十一月偶然得疾經歲臥病日事刀圭秤水自栽滫瀡洗滌親自任之不鮮帶不交睫禱于天願以身代及其遭艱也附身附棺擗踊哭泣喪葬祭禮一如前喪極盡如在之誠鄰里感化校宮表彰焉甞於菜圃作室三間而名之曰太平室設塾儲書敎誨門子侄鄰近負笈之徒日以坌集雖不以師道自居其誘掖奘詡之勤至老不衰也丁巳四月二十日忽寝疾以九月十一日考終于寝訃出遠近士友執誅哀吊曰賢人逝矣莫不歎惜葬于村前水別嶝酉坐之原配草溪鄭氏漢重女擧三男二女男曰光集光植光潤高永孝洪景喆二女婿也孫啓煥啓中啓三啓臣長房生啓年啓泰次房生啓熙啓哲季房生餘不盡錄嗚呼府君之嘉言善行不可殫記而至於奉先之節夙夜憂慮恐盡瘁不벓以傷祖宗之德故洞洞屬屬每日早起櫛沐正冠而參謁祠廟吿之日課至老不廢也宜乎闡揚而晦身草野至痛莫此若焉不肖荒墜家學未甞繼績今不闡述泯於永遠故謹撮晨昏所睹聞如右而亦不敢溢辭用傷府君之至行因之徼惠于後之立言君子焉不勝泣血祈懇之至 不肖子 光集 盥手 謹狀 성재공휘동훈가장(誠齋公諱東勳家狀) 부군의 휘는 東勲이요, 誠齋는 그 호 이시며, 玉川趙氏인데 高麗檢校門下侍中諱璋이 그시조시다. 三傳하여 諱元吉의 號는 農隱인데 공양조(恭讓朝)에 정책훈(定策勳)으로 受封玉川府院君하고 鄭圃隱·李牧隱·李陶隱·吉冶隱으로 더불어 五隱이라 호칭하였으며, 生諱 瑜는 麗朝副正으로 나라가 亡하매 굳게 罔僕義를 지키셨으니, 곧 杜門洞七十二賢中一人이시다. 여러번 전하여 휘 지륜(智崙)은 相好亭湛樂의 風韻이 있었고 또 三傳하여 휘 大春은 河西金先生과 道義로 사귀셨으니, 다 中葉名祖이시다. 高祖 휘 기엽(麒燁) 曾祖 휘 민규(敏奎) 祖 휘 종화(鍾華) 考 휘 인영(縯永)은 다 學行이 있었는데 숨어 살며, 지조를 지키셨고 妣는 豊川任氏 泰俊의 따님이시다. 府君이 융희(隆熙) 戊申년 十月二日出生 하셨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른 기질이 있어 명랑하고 총민함이 무리에 뛰어나고 어버이 뜻을 추호도 어긴일이 없더니, 겨우 七·八세에 入學하여 정독 아니해도 근면 노력하여 많이 배우고 힘써 얻어 細大를 버리지 아니하며, 기름 불을 켜서 새벽까지 이르고 항상 한 마음으로 해를 마치니, 文行이 일찍 진취하여 經傳의 뜻을 강명하고 倫綱을 扶植하시었다. 孝友가 根天하여 어버이께 志物의 봉양을 극진히 하고 남매간에 우애하며, 小學의 法則에 따라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며 각기 그 도리를 다하니 六行이 구비함으로 隣里稱善하고 卿坊이 誦慕하였다. 府君三十六歲 癸未년에 祖妣께서 병환이 나시니, 근심스런 顔色으로 의원을 찾아 약을 지어 약다리고, 죽 끓이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뜰에 거적을 깔고 하늘에 축원하시더니, 天命을 어찌하리 마침내 十二月一日에 별세하시니, 예에 지나치게 슬퍼하시어 울음 소리가 끄치지 않고, 피 눈물이 마르지 아니하며, 거이 목숨이 끈어졌다 깨기를 여러번 하시었다. 喪葬祭奠을 朱文公家禮대로 어김없이 준행하고 매일 일찍 일어나 성묘하니, 무덤 앞에 무릅꾸른 자리가 절구를 이루었다. 祖考께서 乙酉년 十一월부터 우연히 병환을 얻어 해가 넘도록 병상에 누시니, 날마다 약을 지었다. 몸소 다리고 미음과 세탁을 스스로하며, 띠를 끄르지 않고 눈썹을 부치지 아니하며, 몸으로 대신 코저 하늘에 축원 하더니 상사를 당하여는 몸을 안고 관을 붇들며, 가슴을 두드리고 통곡하고 喪葬祭禮를 前喪때와 같이하며, 계신것 같이 정성을 다하니 이웃과 마을이 感化하고 향교에서 表彰을 받았다. 일찍 菜圃에 三間집을 지어 太平室이라 이름하고, 學堂을 만들어 책을 싸고 門子侄을 가르치니, 鄰近에 책을 진 무리가 날로 구름모이 듯 하였다. 비록 師道로써 自處는 아니하나 그 誘掖하고 奘詡한 勤誠은 늙도록 감쇠하지 아니하시었다. 丁巳四月二十日에 문듯 병환을 얻어서 그해 九月十一日 정침에서 별세하시어 부음이 들이매 원근 士友가 제문을 지여 슬피 조상하며, 어진 사람이 갔다 탄식 아니한자 없었다. 村前洙別嶝酉坐之原에 안장하고 배 草溪鄭氏는 漢重의 따님으로 三男二女를 두셨는데 男은 光集·光植·光潤이요, 高永孝 洪景喆은 二女婿며 손자 啓煥·啓中·啓三·啓臣은 長房生이요, 啓年·啓泰는 次房生이며, 啓熙·啓哲은 季房生이고 나머지는 더 기록 아니함. 오오라 부군의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을 다 기록 할 수 없고 그 선영을 받든 마음은 항상 정성이 부족하여 선조의 끼친 덕을 손상 할까 념여하여 숙야 근심하고 매일 일찍 일어나 소쇄 正冠하고 사당에 참알하여 當日行事를 고한후에 퇴묘 하기를 종신불페하시었다. 이와 같은 높은 행의는 열어 드날리는 것이 마땅한데 草野에 묻혔으니, 이와같은 지극한 슬픔은 없읍니다. 불초가 거칠어 家學을 떨어뜨리고 일찍 계적치 못하니, 이제 기술 아니하면 영원히 민몰 될것이므로 삼가 朝夕으로 보고 들은 것을 간추려 右와 같이 쓰고, 감히 허튼말을 보태어 府君의 至行을 훼상치 아니하며, 따라서 후일 立言君子의 正筆를 피눈물을 머금고 간구함니다. 불초자 光集 쇄수 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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